근대 이전의 여행

이전에도 일부 별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여행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하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필수요소도 아니었고 인생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럽으로 한정하면 종교적 순례가 여행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례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의미였지 현대적 여행은 아니었다. 순례를 다녀온 사람은 큰 존경을 받았지만 순례를 꼭 가야하는 것은 아니었고 실제 순례는 의지와 시간이 있거나 비범한 소수 만이 행하는 것이었다.

여행이 한 계층 전체에 큰 의미를 지니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7세기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였을 것이다. 이른바 그랜드 투어가 처음에는 영국에서 나중에는 북유럽 귀족과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였고 18세기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랜드 투어

그랜드 투어는 영국 상류층의 고전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이 싹트기 시작한 르네상스에 대한 예찬과 관련이 되어 있다. 영국 상류층이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서 공부하고 난 후에는 리비우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가 실제 활동했던 로마와 북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을 보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의 상류사회는 젊은 귀족이라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고, 엄격한 프랑스식 궁정예법을 알고 외국 귀족과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랜드 투어는 교육의 완성이자 통과의례였다. 현대식의 여행이라기 보다는 유학과 사회적 지위 확인의 장에 가까웠던 것이다. 런던에서 출발해서 도버, 칼레, 파리, 리옹, 샹베리, 몽스니 고개를 넘어 토리노,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를 방문하고 추가적으로 독일과 저지대까지 방문하는 데에는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이 걸렸다. 이 대장정에는 가정교사나 친족이 반드시 감독자로 따라붙었다. 여행지에서 높은 안목을 기르고 고대와 르네상스기 작품과 소품, 책들을 직접 사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이 향후 영국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랜드 투어 중 로마를 방문한 영국 젠틀맨들


Catherine Read(1750), British Gentlemen in Rome, Yale Center for British Art

로마는 그랜드 투어의 궁극적 목적지였다. 배경에 그려진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그랜드 투어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는 듯하다.

윌리엄 벡퍼드의 그랜드 투어

영국의 문필가이자 정치인인 윌리엄 벡퍼드(William Beckford)는1780년 그랜드 투어를 떠났는데 이때 쯤에는 그랜드 투어의 목적에 자연경관 감상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고하자.

그랜드 투어의 쇠퇴와 현대 여행의 탄생

그랜드 투어가 쇠퇴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이 너무 쉬워졌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전쟁기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그랜드 투어는 전쟁이 끝난 1815년 이후 다시 활발해졌지만 이미 철도와 증기선의 시대였다. 귀족이 수년에 걸쳐 하던 여행을 이제 중산층도 몇 달이나 몇 주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현대적 여행이 싹트기 시작했다.

현재도 유명한 거대 여행사 Thomas Cook & Son의 창업자인 영국의 토마스 쿡은 현대 여행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가구 장인의 견습공이었던 토마스 쿡은 독실한 침례교인이었고 순회 설교자로도 활동하였다. 1830년대부터 쿡은 당시 영국에 유행이었던 금주운동에 깊숙이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841년 쿡은 금주 집회에 참가자들을 대규모로 싸게 데려가기 위해 철도회사와 협상을 하였는데 이것이 현대적인 단체여행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이후 쿡은 박람회, 해안 휴양지, 스코틀랜드 등으로 단체여행을 조직하였고, 특히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전국 각지 사람들을 보내면서 사업이 급성장하였다. 결국 유럽대륙까지 진출하였다. 그랜드 투어가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의 문화였던데 반해 현대적 여행을 창시한 쿡은 가난한 하층 장인 출신의 침례교 금주운동가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철도와 중산층의 확대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1)

토마스 쿡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여행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사업이 확대되었어도 토마스 쿡의 목적은 교육, 금주, 도덕적 이상에 있었다. 쿡은 평범한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시야를 넓히기를 원했다. 반면 아들 존 메이슨 쿡은 사업가에 가까운 인물이어서 부자의 갈등이 심했고 결국 1878년 경영에서 은퇴한다. 1880년대에 Thomas Cook & Son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여행회사가 되어 있었다.

토마스 쿡의 패키지 여행

숭고미의 발견

현대적 여행이 독실한 침례교인의 종교적, 도덕적 동기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것이다. 오늘날 유럽 여행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알프스 여행은 좀 더 극적인 문화적 변혁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자세히 살펴보자.